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개변된 역사 (문단 편집) == 핀란드 == [[핀란드 공화국]]을 압박하는 소련이 카르얄라와 라플란드, 올란드 제도를 할양하고 주요 항구를 30년간 조차를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면서 전쟁을 벌이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에 따라 재무장관 배이뇌 탄네르와 외무장관 엘랴스 에르코가 디트리히와 브란트를 접견해 [[게베어 1898|게베어 소총]], [[대전차 소총]] [[PaK 36]] [[대전차포]]를 대거 지원받는 밀약을 맺는다. 신정부 편에 선 국방군과 나치가 베를린 공방전을 벌이는 동안 마이닐라에서 소련이 벌인 자작극으로 인해 겨울전쟁이 발발한다. 독일 내전이 끝난 후 소련과의 초전에서 선전하고 독일의 지원을 발표해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의 지원을 원역사보다 빠르게, 더 많이 받게된다. 겨울동안 선전하고 1940년 2월 말쯤에 소련에게 휴전을 제의하나 망신을 당한 스탈린의 분노에 90만으로 증원된 소련군의 재공세를 받아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되나, 폴란드가 독일에 의해 궁지에 몰리게 되자 우선순위를 바꾼 스탈린이 대부분의 병력을 폴란드쪽으로 이동시키면서 우선순위와 소련이 얻을 이익이 적은 핀란드는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소강상태 상황에서 [[니켈]]을 대금으로 지급하며 독일에게 전투기등 많은 지원을 받게 되었고, 독일에게 연합국 가입의사를 타진한다. 처음엔 소련을 자극할 것을 우려하여 가입이 유보되지만, 소련의 독일내 여론 공작 증거가 드러나면서 생긴 독일내 반소련 여론과 소련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독일군의 분위기로 인해 폴란드와 함께 연합군의 일원이 된다. 이후 소련이 폴란드와 함께 소련-일본 불가침 조약 덕분에 극동에서 정예병 100만을 이동시켜 침공을 가하자 20만을 동원해 방어전을 치뤘고, 역량에 밀려 만네르하임 라인이 돌파당하면서 [[카렐리야]]를 위협 받는다. 그러나 핀란드에 파견된 루프트바페와 핀란드 공군이 소련공군을 거의 전멸시키고 제공권을 얻어 소련군을 극도로 견제하며 피해를 주고 있으며, 연합국의 증원과 계속된 지원덕분에 희망을 얻어 결사항전 중이다. 한편, 프랑스가 항복하면서 독일과 프랑스의 협상 결과 드골의 프랑스 주력군 100만(정확히는 97만)이 핀란드에 파병됨으로서 전세는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패배감에 휩싸여 탈영까지 일어나는 등 패잔병에 가까웠던 프랑스군은 조국을 지키고자 노인, 여자, 어린아이까지 총을 들고 싸우는 핀란드인들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전의를 불태웠고 드골 장군의 지휘하에 펼쳐진 핀란드-프랑스 연합군은 총 반격을 개시, 소련군을 거침없이 박살내가며 점령당한 핀란드의 영토를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는 공세로 돌아서서 콜라반도를 점령하고 소련과의 종전협상에서 점령지를 그대로 영토로 인정받는 쾌거를 이룬다. 전후 핀란드는 콜라반도와 카렐리야를 바탕으로 빠르게 국가를 재건해 나갔고, 외교적으로는 친독노선을 유지했으나 때에 때라서는 독일의 의견도 반대하는 강단을 보여주었다. 현대의 핀란드는 사민주의가 강한 국가답게 훌륭한 복지를 제공하는 작지만 살기 좋은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반소 감정은 여전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